꼬꼬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그 참담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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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리뷰

꼬꼬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그 참담했던 이야기

by 칠공칠공 2021. 6. 10.

6월 10일에 방영되는 꼬꼬무의 주제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편입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던 1995년 6월 29일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삼풍백화점은 어떤 곳?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해있던 삼풍백화점은 1989년 12월 1일에 개점한 지상 5층, 지하 4층의 강남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급 백화점이었습니다. 화려한 명풍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었으며 수입품과 사치품들을 판매하였고 다양한 행사도 개최되었습니다.

 

응답하라 1994에서도 붕괴 당일 나정이와 칠봉이가 삼풍백화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방영한 적도 있는데요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 실종자 6명을 만든 끔찍한 참사였습니다.

 

붕괴의 조짐과 원인

사건 당일 전날 28일 이미 붕괴의 조짐이 있었습니다. 옥상 바닥이 무게를 이기지 못한고 무너져 버리는 펀칭 현상이 있었고 붕괴되던 29일 아침에도 5층에서 바닥이 함몰되는 등 눈에 띄는 조짐들이 보였습니다. 이에 책임자들은 현장을 점검했고 구조기술사의 붕괴위험으로 인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한 말을 무시한 채 일부만 폐쇄하고 영업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붕괴 직전 백화점 시설부장은 경영진에게 긴급하게 대피할 것을 알렸고 경영진들은 1천오백여명이 되는 고객들과 직원들을 내팽개치고 그들만 백화점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당시 이준 회장은 백화점 안에 자신의 첫째 며느리가 있었음에도 불구고 본인만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이준 회장은 사고 이후에 손님들도 피해를 입었지만 본인 회사의 재산도 망가진거라는 발언을 해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기존에 삼풍백화점은 지상 4층, 지하 4층 건물이었지만 불법 용도변경을 통해 한층을 더 증축하여 지상 5층짜리 건물이 되었습니다. 인허가상에서 불법이 이뤄졌으며 구조적인 결함과 안전진단 등의 문제가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한 채 공사를 이어 나갔고 백화점을 운영하여 결국에는 붕괴라는 참사까지 발생했습니다.

 

 

 

 

붕괴 후 삼풍백화점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주변은 잔해더미와 흙먼지로 가득했고 핑크색을 뽐내던 백화점은 회색빛의 붕괴 참사 현장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단 20초 만에 무너져버린 참담한 현장이었습니다.

 

마지막 생존자

붕괴 후 17일만에 구조된 마지막 생존자가 있었습니다. 붕괴 당일 생존자는 지하 1층 아동복 매장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엄청 큰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생존자는 중앙홀 계단으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좁은 콘크리트 틈에서 정신을 차린 생존자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생존의 두려움과 싸우며 버텼습니다. 17일이 되던 날 오전 구조대원의 인기척에 생존자는 마지막 힘을 다해 살려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6.25전쟁이후 최대 인명피해가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는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삼풍백화점 이준 회장은 7년 6개월의 형만을 선고받았으며 나머지 관련 책임자도 솜방망이 처벌뿐이었습니다.

 

얼마 전 광주 재개발지역의 철거현장에서 5층 건물이 무너져 지나가던 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이번에도 붕괴 전 조짐이 있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삼풍백화점 사건 이후로 부실공사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건물 안전 진단과 건축법 등이 변화하였지만 아직까지 미비하다고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인명피해가 없도록 법과 규정을 더 단단히 하고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계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삼풍백화점 현재위치

현재 삼풍백화점이 세워졌던 위치에는 주상복합건물인 아크로비스타가 위치해있는데요 삼풍백화점 붕괴 후 5년 동안 방치해 있다가 주상복합건물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재 시민의 숲 내에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길 바라며 이글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